두서없고 뒤늦은 2020년 회고
작년은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 된 해였다. 다시 이직하게 됐는데 내가 원하던 회사로 옮긴 게 이전과 큰 차이일 것 같다. 이전까지 다니던 회사들은 IT 회사지만 인력 관리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직접 뭔가 개발하는 것보다 적당한 업체와 계약해서 정해진 기간 안에 결과물을 내는데 포인트가 맞춰져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물을 보면 항상 아쉬웠다. 똑같이 아쉽더라도 내가 직접 한다면 후회는 덜 할 텐데.. 하는 마음과 함께.
이직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사실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게 연차에 비해 실력이 (내 기준에) 부족했다. 목표는 높은데 그곳에 도달할 준비가 돼있냐고 자문한다면 그렇지 않았다. 처음으로 회사, 일하는 환경, 하는 일을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마 2016년쯤이 아니었다 싶다. 처음 2년간은 사내 서비스를 유지 보수하며 여러 개선 포인트를 찾아 개선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일이 익숙해지는 시점부터 불만이 생겼다. 당시 내가 맡은 일은 계속해서 확장 중이었다. 나는 유지보수도 좋지만 추가 개발이 필요한 일도 하고 싶었는데 당시 리더는 운영 업무만 맡길 원했다. 고객도 우리가 추가 개발업무를 맡아주길 원했는데 결국 내가 하진 못했다. 그렇게 정해진 일만 반복해서 하다 보니 루즈해지고 뭐 하는 건가 싶어서 외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당시 핫한 서비스 회사의 기술 블로그나 개발자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트렌드를 읽고 필요한 건 도입해보려고 해 봤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제조가 주력인 회사라 그런지 사내 서비스의 성능 개선 같은 건 큰 이슈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찌어찌해서 지금의 회사를 면접 보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여태까지 내 경험이 헛된 게 아닐까? 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나? 여태 놀아서 지금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하는구나.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런데 합격 통지를 받고 다니게 됐다.
확실히 업계를 선도하는 업체라서 그런 건지 문화가 달랐다. 제일 놀란 점은 사내 IT 플랫폼이었다. AWS와 유사하게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편리하게 사용하고 프로비저닝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리고 시니어급 동료가 실제 업무를 함께 수행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이전까진 시니어급이라고 할 수 있는 연차의 선배들은 모두 개발을 털고 프로젝트 관리 위주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다 보니 고객이 요청하는 사항을 잘 파악하지 못하기도 하고 (나의 관점에서) 후배들과 괴리도 생겼다. 선배와 함께 일하며 서로 피드백해주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게 (당연하지만) 놀라운 경험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개선하려 노력하는 문화도 좋다. 모두가 개발하고 있으니 불편한 건 고치려고 노력한다. 시니어가 개발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전 회사에선 개선 포인트를 말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이 좋다. 좋은데 부족하다. 자꾸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재택근무로 시작하다 보니 사람들과 부대끼며 알 수 있는 콘텍스트를 놓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햇수로 7년 차인데 실력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급하고 불안하고 나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아무도 나를 푸시하지 않고 천천히 하라고 말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그래서 올해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불안감도 있지만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밌다. 그래서 더 하게 되는 것도 있다.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는 것도 좋다. 더 나은 동료가 되고 싶다.